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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문

개인주의적 아나키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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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도서명 개인주의적 아나키즘
저자 김은석 지음
출판사 우물이있는집
정가 12,000원
발행일 2004년 04월 26일
사양 301쪽 | 427g
ISBN 9788989824251

대표적인 개인주의적 아나키즘 사상가인 고드윈의 인도주의적 아나키즘, 슈티르너의 에고이스트적 아나키즘, 터커의 자유방임적 아나키즘을 개괄한 책. 국가 · 조직 · 이념을 위해 개인을 도구화하는 것에 반대하는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은 사회주의 운동의 틀 안에 갇힌 사회주의적 아나키즘보다 일체의 구속과 지배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아나키즘의 궁극적 목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사상은 국내에 제대로 소개된 적이 없다. 이 책은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을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하고 검토한 것이다.

저자 : 김은석

한양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했으며, 동대학원에서 르네상스 유토피아 사상을 연구하던 김영한 선생 밑에서 서양사를 전공했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에 나타난 이상주의와 현실주의」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1994년 개인주의적 아나키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인간사회의 이상적 가치와 질서에 대한 그의 관심은 국가와 권위를 부정하고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는 서구 아나키즘으로 눈을 돌리게 했다. 그 중에서도 아나키즘의 핵심을 설파했던 유럽과 미국의 개인주의 아나키스트들에게 매력을 느꼈다. 개인이야말로 자기 운명의 주관자이며 그 이외의 어떠한 힘도 그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는 사상을 가진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들은 지금도 우리에게 강력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그는 현재 제주교육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서구 아나키즘의 후계자들은 물론 이와 상반된 사회사상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최근 아나키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3가지 이유

    최근 아나키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아나키즘이 표방하는 탈집중화와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는 신좌파(New Left) 및 신우파(New Right)운동, 그리고 최근 주목을 끌고 있는 ‘신사회운동’(New Social Movements)―환경운동, 반핵운동, 여성해방운동, 지역자치운동 등―의 이념적 기초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현재 주류를 형성해가고 있는 이러한 사회경향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아나키즘을 알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둘째, 국가와 사회체제에 의한 폭력이 아나키즘이 발흥했던 19세기말-20세기초보다 심각해짐에 따라, 그것을 폭로하는 아나키즘의 역할이 증대되고 있다. 특히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몰락하면서 그 내부의 국가적 폭력에 대해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 지식인들이 아나키즘에 관심을 갖는 경우가 많아졌다. 사회주의에 대한 이상과 동경 대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막론하고 국가적 폭력의 본질은 같다는 아나키즘의 주장이 신선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성공한 이데올로기로 보였던 사회주의는 퇴조하고 그와의 경쟁에서 실패한 이데올로기로 보였던 아나키즘이 새롭게 대두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정치적 상상력의 원천으로써 아나키즘이 호응을 얻고 있다. 현존하는 사회체제들이 지속불가능한 것으로 판단하는 많은 지식인들이 사회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기존질서의 파괴, 그리고 사회에 대한 ‘재건축 의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전문기술관료의 수중에 넘겨진 산업사회, 강한 정부와 제휴하고 있는 경제, 인간 소외와 무력감을 가중시키는 획일적인 사회구조, 인류를 절멸시킬 가공할 핵무기와 생태계를 파괴시키는 환경오염은 아나키즘의 비판을 환기시켜 주고 있다.

    사회주의적 아나키즘과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은 어떻게 다른가

    아나키즘은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보는지, 개체적 존재로 보는지에 따라서 크게 사회주의적 아나키즘과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으로 나눈다.
    사회주의적 아나키즘은 사회적 존재인 인간은 공동체 내에서 비로소 자유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인간사회를 대립과 갈등관계에 놓이게 한 것은 개인주의와 사유재산제이므로 공동체적 연대를 통한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위한 사회혁명을 주장한다.
    반면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은 개체적 존재인 인간은 자아성취를 집단 속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적 생활에서 얻는다고 본다. 개인은 그 자체가 목적이므로 어떠한 경우에도 사회를 위한 수단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개인의 완전한 자유와 독립의 보장이 이루어져야 개인과 사회가 침체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사회주의적 아나키즘과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은 인간관과 그 목적이 이처럼 첨예하게 다르다. 사회주의적 아나키스트로는 바쿠닌, 크로포트킨, 말라테스타 등이 있고,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로는 고드윈, 슈티르너, 터커 등이 있다.


    사회주의적 아나키즘은 국가주의의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

    일반적인 통념과는 다르게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와 사회주의적 아나키스트는 같은 이념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다를 뿐 아니라, 서로 대립된다.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들은 사회주의적 아나키즘 역시 개인의 자유를 위협하는 장애가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첫째, 아무리 연대성에 토대를 둔 사회라 할지라도 공동선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사회는 불가피하게 강제적인 간섭과 규제를 필요로 함으로써 결국 개인의 자유와 독립을 위협할 수밖에 없다. 둘째, 생산수단의 사회화는 개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조건을 개선시키려는 의지와 욕구를 가로막고, 그 창의성과 성취욕을 무력화시킨다.
    그러므로 사회주의적 아나키스트들의 미래사회는 결국 통제와 억압 안에서 평등을 수립하려는 음모 이상일 수 없으며, 국가주의의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이 주목받지 못한 이유

    이제까지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이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한 데에는 기존의 아나키즘 연구가 주로 사회주의운동의 역사적 측면에 초점이 맞추어져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나키즘은 각종 사회주의 세력과 연계되면서 19세기 후반 이후의 유럽 및 미국의 노동운동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고, 아나키스트 대부분은 자신의 역할을 사회주의 운동의 일환으로 생각했다. 정치세력화에 있어서 사회주의적 아나키스트들이 마르크스주의자들보다 취약했듯이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들은 그 이론의 성격상 사회주의적 아나키스트들 보다 정치세력화가 힘들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세력화의 규모에 영향을 받는 가시적 운동 차원에서 본 역사적 고찰은 개인주의적 아나키즘 연구를 소외시킬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상사적 측면에서 보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은 개인주의와 자유주의 그리고 아나키즘의 이론적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개인주의적 아나키즘과 사회주의적 아나키즘에 대한 엄밀하고도 균형있는 평가가 있어야만 아나키즘의 전반적인 특징을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개인주의와 자유주의 역시 이해할 수 있다.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에 대한 최초의 국내서

    세계적으로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이 사상에 미친 영향이 작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연구는 미진한 상태이다. 특히 국내에서는 개인주의적 아나키즘 연구는 거의 된 것이 없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막스 슈티르너, 윌리엄 고드윈, 벤자민 터커는 인문독자들에게 그리 낯선 이름이 아니다. 그들은 많은 책에서 인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그들을 인용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을 뿐이다. 그들은 국내에 한번도 제대로 소개된 적이 없다(이들의 사상은 번역서로도 소개된 적이 없다). 국내에서도 아나키즘에 대한 연구가 조금씩 활기를 띠어가고 있지만,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에 대한 연구는 거의 사각지대나 다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최초로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을 소개하고 그 현대적 의미를 살펴본 이 책은 사상사 연구의 공백을 메꿔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아나키즘의 본질은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에 있다

    개인은 각자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자기 완성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인간관, 어떠한 사회제도도 개인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되며, 그러한 사회가 실현 가능하다는 사회관, 개인의 완전한 독립과 자유의 보장이야말로 인간의 자기실현과 사회발전의 전제조건이라는 진보관은 압제와 착취에 저항하는 아나키즘 일반이 지향하는 목표이다. 그러므로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은 아나키즘의 핵심 원리와 불가분의 관련을 맺을 뿐 아니라 오히려 아나키즘이 표방하는 이념과 정신의 원천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사회주의적 아나키즘보다 많은 도움을 준다.
    엠마 골드만 이후 20세기 아나키스트들이나 자유지상주의를 표방하는 각종 사회운동세력들이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의 이념을 적극 평가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또한 개인의 자유와 개성이 심각하게 위협받는 오늘날,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은 사회병리적 현상들을 분석하는 데 유효하며,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아나키즘은 모두 좌파라고?

    아나키즘은 일반적인 통념과는 달리 그 스펙트럼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넓다. 평화적 아나키즘과 폭력적 아나키즘, 무신론적 아나키즘과 그리스도교적 아나키즘, 진화론적 아나키즘과 혁명적 아나키즘, 인도적 아나키즘과 에고이스트적 아나키즘이 있다. 그런가 하면 자연으로 돌아 갈 것을 주장하는 아나키즘(back-to-nature anarchism)과 테크놀러지의 멋진 신세계를 표방하는 아나키즘(brave-new-technological world anarchism)이 있다. 가부장적 가족제를 미래사회의 근간으로 삼는 아나키즘이 있는가 하면, 페미니즘을 역설하는 아나키즘이 있다. 자본주의의 타도를 외치는 아나키즘이 있는 반면, 자유시장경제를 추구하는 아나키즘이 있다.
    특히 경제적 자유방임을 주장하는 터커의 자유방임적 아나키즘을 읽노라면 그의 아나키즘이 시장자유주의와 유사하다는 점을 발견할 것이다. 또한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파악하고 이기심의 실현을 주창하는 슈티르너의 인간관을 보노라면, 사회주의적 아나키즘만이 아나키즘의 전부인 줄 알고, 아나키즘은 당연히 좌파라고 생각해온 독자들을 놀라게 할 것이다. 이 책은 아나키즘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줌으로써 그 편견을 깬다.
    아나키즘이 이와 같이 다채로울 수 있는 것은 아나키즘 자체가 도그마를 배격하기 때문이다. 경직된 사고나 화석화된 강령의 준수를 거부하며, 다양성과 유연성을 생명으로 하는 아나키즘은 “아나키즘이 철학이기 보다는 하나의 경향이며, 이 경향은 계속해서 혁신되고 발전하는 수 많은 길을 가지고 있다”는 노엄 촘스키의 말을 상기시킨다.


    사회주의의 몰락과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의 대두


    역사적으로 아나키스트들은 사회주의 혁명에 마르크스주의자들과 함께 뛰어들어 혁명을 쟁취했지만 그후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의해 처절하게 와해되고 진압되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해야 했다. 역사적 패배자의 길을 간 그들은 역사 속에서 소외되고 잊혀졌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사회주의가 몰락했다.
    사회주의가 몰락한 이후 사회주의적 아나키즘은 마르크스주의와 함께 성찰의 대상이 되었으나,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은 새로운 사회건설의 이념적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사회주의 혁명에 가담했던 사회주의적 아나키스트들은 혁명 메카니즘의 몰락으로 동반추락한 반면, 사회주의적 아나키즘과 대립각을 세웠던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은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다. 혁명을 꿈꾸기 보다는 개혁을 선택한 새로운 사회운동의 철학적 자양분이 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