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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의 일상생활: 제국 전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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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도서명 고대 로마의 일상생활: 제국 전성기
저자

제롬 카르코피노 지음 | 류재화 옮김

출판사 우물이있는집
정가 22,000원
발행일 2003년 08월 04일
사양 526쪽 | 915g
ISBN 9788989824183

로마인들이 전세계를 호령하며 힘과 번영을 구가하던 최대의 절정기였으나 한편으로는 사치와 퇴폐로 부식되어가고 그리스도교가 스며들어 오던 서기 1세기 말 로마인들의 삶을 거의 완벽하게 재현한 책. 종교, 정치, 법률, 결혼과 이혼, 가족에서부터 거리와 건물, 학교, 직장, 하루 일과표, 식사와 옷, 화장에 이르기까지 고대 로마인들의 일상생활을 세세히 들여다본다. 고대 로마인들의 문명과 생활상을 살펴보는 것 뿐만 아니라 그들의 감정과 의식, 고민과 절망, 의지와 희망을 엿볼 수 있다.

p>저자 : 제롬 카르코피노
고대 로마의 일상생활사 분야에서 천제적인 역사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제롬 카르코피노는 프랑스 베르뇌유-쉬르-아브르에서 태어났다. 고등사범학교를 나와 1904년 역사 및 지리교수자격시험에 합격한 뒤 1907-1911년 아브르에서 교편을 잡았고 이후 로마에 머물며 에콜 프랑세즈 위원을 지냈다. 1912년 알제 대학에서 강의했고 이듬해 알제리 국립고고학박물관 관장을 역임했다.
두번이나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으며 소르본에서 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에서 로마 역사를 가르치다가 1937년 로마에콜 프랑세즈 학장에 선임되었다. 로마고고학 교황아케데미 위원, 옥스퍼드 대학 명예교수, 비문 문학회 위원 등을 지냈으며 1955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쥐원으로 선출되어 줄곧 활동하다가 1970년에 사망했다.
이 책 『고대 로마의 일상생활』은 근대에 씌어진 거의 모든 로마 역사서에서 가장 핵심적인 참고문헌으로 인용되고 있다. 그 밖의 저서로 『로비디우스와 이시스 숭배의식』『술라 혹은 실패한 군주제』『이교도 로마의 신비적 양상』『피타고라스에서 사제들까지』등 30여 권이 있다.

옮긴이 : 류재화
고려대학교 불문학과에서 공부했으며 출판사에서 여러 해 일했다. 지금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마르크 블로흐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고대 문명의 일상생활> 시리즈를 내며

    현대역사학에서 생활사는 갈수록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거대담론 보다는 자질구레한 일상생활이 인간을 지배하는 하나의 코드로 인식되면서 역사에서도 지난 역사의 주인공이었던 수 많은 무명인들의 생활상이 주요 테마로 떠오른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기록이 많이 남아있는 근대나 중세가 아닌 ‘고대인들의 생활상’을 복원해내는 작업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우선 자료도 중세 이후에 비해 적을 뿐 아니라 2천년 이상의 시간의 장벽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도서출판 ‘우물이 있는 집’이 이번에 발간하는 <고대 문명의 일상생활> 시리즈는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프랑스 최고의 역사학자들이 이제까지의 연구성과를 집대성해 탄생시킨 귀한 열매이다. 철저한 고증과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이 시리즈는 학문적 엄밀성에서 가장 빼어난 생활사로 정평이 나있다.

    이 시리즈의 또 하나의 특징은 고대시대 중에서도 각 문명의 성격이 집약되어있는 특정 시공간을 단면으로 잘라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이 특징은 생활사의 기술(記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추상적이고 애매한 ‘한 시대’가 아닌 ‘특정 시공간’을 다루는 것은 ‘한 시대’를 살았던 모든 사람들의 생활이 같지 않다고 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 중에서도 ‘서울’에 사는 사람과 ‘강원도 산골마을’에 사는 사람의 생활상이 무척 다르다는 것, 혹은 같은 시대이지만 아버지세대와 자식세대간의 생활상의 차이도 심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 같은 서술방식의 장점을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설사 고대에도 지금처럼 세대간의 차이가 극심했겠느냐고 반문할 수있다. 그러나 저자들은 이 같은 생각은 현대인의 편견일 뿐이며 당시에도 생활상의 차이가 세대마다 있었다고 주장한다.

    생활사 연구의 출발점이었던 『고대 로마의 일상생활』을 비롯한 <고대 문명의 일상생활> 시리즈는 수준높은 생활사의 진수를 보여줌과 동시에 2천년을 뛰어넘어 고대 주요 문명을 건설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했는지를 잘 보여줄 것이다. 시리즈는 총 5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 고대 로마의 일상생활 - 제국 전성기
    제롬 카르코피노 지음 / 류재화 옮김
    ■ 고대 그리스의 일상생활 - 페리클레스 시대
    로베르 플라스리에르 지음 / 심현정 옮김 (근간)
    ■ 고대 인도의 일상생활
    잔닌 오브와에 지음 / 임정재 옮김 (근간)
    ■ 고대 팔레스타인의 일상생활 - 예수 시대
    자크 수텔르 지음
    ■ 고대 아즈텍의 일상생활
    앙리 다니엘로 지음

    생활사 분야의 현대고전
    1939년 초판이 발행된 이후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오고 있는 이 책은 『로마인 이야기』를 썼던 시오노나나미를 비롯한 수 많은 로마 연구자들이 필수적으로 참고하는 중요한 문헌이다. 이 책의 진가는 세계에서 가장 상세한 생활사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치밀한 역사복원에 있다. 처음에는 저자의 호흡을 따라가기가 녹녹치 않지만 그 호흡에 익숙해지기만 한다면 고대의 세계가 눈앞에서 펼쳐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이 같은 명성에도 불구하고 제롬 카르코피노는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는 학자이다. (엘리아스 카네티의 『군중과 권력』의 참고문헌으로 알게 된 이 책을 찾아 출간을 결정했을 때만 해도 그저 ‘괜찮은 책’ 정도는 되겠거니 했던 편집자가 나중에 프랑스에서 유학 중인 역자에게서 맨 처음 들은 말은 “정말 대단한 책입니다!”였다.) 이 책에는 역사에 대한 섣부른 평가보다는 생활상 그 자체를 ‘확실한 근거’에 따라 ‘정교하게’ 복원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는 깐깐하기 그지 없는 저자의 학자적 면모가 고스란히 드러나있다.

    이보다 더 상세한 생활사는 없다
    2천년을 뛰어넘는 시간적 거리가 있는 ‘고대 로마의 생활상’을 상세하게 복원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책은 고대도시 로마에서 살다가 방금 빠져 나온 의식있는 열혈 청년 하나가 당대를 증언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고대 로마인의 하루를 거의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역사학자일 뿐 아니라, 지리학자, 고고학자, 라틴학자이자 묘비나 기념비의 문자를 해독하는 비문(碑文)학자이기도 한 저자는 마치 독자의 인내심을 시험하듯이 끈질기고 세세하게 당시의 생활상을 증명하는 증거들을 들이댄다. 한 마디로 이 책은 인내심이 필요한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의 특징인 유물에 대한 대한 집요한 분석과 그에 대한 거침없는 성토 그리고 신랄한 비판은 왜 그를 생활사분야의 독보적이면서도 천재적인 역사가로 부르는지 알게 해줄 것이다.

    종교, 정치, 법률, 가족, 결혼과 이혼 등의 사회문화적 현상들로부터 거리와 건물, 학교, 직장, 하루 일과표, 식사와 옷, 화장, 면도, 목욕 등의 일상사에 이르기까지 그 무엇 하나 빼놓지 않고 있는 이 책은 그야말로 연극 무대를 보듯 고대 로마인들의 일상생활을 세세히 들여다보게 한다. 당시 로마인들을 열광시켰던 경마 경기와 도박, 원형 경기장(콜로세움)의 인간 살육전 등이 실감나게 펼쳐진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고대 로마인의 생활상 뿐 아니라 그들의 정신세계를 만날 수 있다. 저자에 의해 밝혀진 수많은 로마 유적과 건축물의 사실적인 의미들은 고대인과 고대문명에 대한 무지와 편견에서 깨어나게 할 뿐 아니라 인간과 삶, 세계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반성하게 한다.

    이 책이 다루는 시공간
    이 책은 시간적으로는 서기 1세기 말, 즉 로마가 최대의 번성과 생산력을 자랑하던 시기를, 공간적으로는 우르브스, 즉 도시로마를 다루고 있다. 흔히 현대의 생활상의 변화는 역동적이지만 고대는 그렇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저자는 고대에도 지금처럼 한 세대만 지나도 생활상의 변화가 많았다고 증언한다. 그러므로 생활상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시공간의 한 단면을 잘라서 살펴보아야 정확하게 실생활이 재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문명사의 한 단층만을 잘라내 상세하게 다룸으로써만이 당대의 삶을 가장 정확하게 복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루는 시공간의 폭이 크지 않다고 해서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이 시기는 물리적으로는 고대 로마가 번영과 힘을 구가하며 물적 토대를 튼튼히 쌓았던 시기임과 동시에 정신적으로는 동방 이교의 영향으로 전통적 요소들이 점차 무너져가는 시기이다. 또한 오만할 뿐 아니라 사치와 퇴폐로 부식되어가는 로마 사회로 그리스도교가 밀려들어오던 때이기도 하다. 그 시공간은 고대로마시대의 다양한 특징이 가장 집약되어 있어 당대의 시대상을 파악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천재적인 역사가 제롬 카르코피노
    서릿발처럼 매서운 역사관으로 냉혹하리만치 객관적이면서도 풍자적이고 유려한 문체로 유명한 제롬 카르코피노는 천재적인 역사가로 평가된다. 생활사의 학문적 기초를 세운 저자는 30여 권이 넘는 저작들을 발표했으며, 로마고고학 교황아카데미 위원, 옥스퍼드대학 명예교수, 비문(碑文)학회 위원 등을 지냈고 1955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위원으로 활동했다.

    1881년 프랑스 베르뇌유 쉬르 아브르에서 태어난 그는 고등사범학교를 나와 역사 및 지리 교수자격시험에 합격한 후 교편을 잡다가 이후 로마에 머물며 에콜 프랑세즈 위원을 지냈다. 두 차례나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으며 소르본에서 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에서 로마 역사를 가르치다가 1937년 로마 에콜프랑세즈 학장으로 선임되었는데, 『고대 로마의 일상생활』은 이때 쓴 책이다. 제2차 세계대전과 독일 점령 기간 동안 고등사범학교장을 지내다가 친독 정부였던 비시 페탱 내각의 교육부장관직을 수락하는데 이 전력은 그가 살아있을 때 뿐 아니라 사후에도 줄곧 그를 괴롭히게 된다. 그러나 여러 자료를 토대로 보면 그는 당시 교육부장관직을 수락하는 것이 조국 프랑스를 위한 일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1942년 4월 라발 정부가 수립되면서 그는 직위해제되었으며 해방 후 이 전력이 문제가 되어 프레스네 감옥에서 복역했다. 그러나 그전의 레지스탕스 활동 경력이 인정됨으로써 1947년 석방된다. 1951년 학계로 다시 돌아와 연구활동에만 전념함으로써 나치협력에 대한 추문과 비난은 더 이상 불거지지 않았으며 1970년 사? 좡杉?

    모든 인간이 평등한 생활사
    대부분의 로마역사서들은 로마 건국에서부터 멸망할 때까지 정치와 황제를 중심으로 기술되었다. 그러나 이 책은 정치와 전쟁, 황제의 무훈과 치적이 그 중심적인 내용이 아니다. 그대신 먹고 마시고 배설하고, 입고 단장하고, 공부하고 일하고, 보고 즐기고, 사랑하고 질투하는 인간 삶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이 우리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진다. 생활사는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모습이며 그렇기 때문에 2천년이 지난 지금도 가장 공감하기 쉬운 최대 공약수이다. 카르코피노의 생활사의 특징은 모든 인물들을 공평하게 대접한다는 것이다. 생활사에서는 당대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은 생활이 역사이므로 공평한 시각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황제의 정책, 전쟁, 로마의 정치와 시스템을 기술하고 강조할 때도 당대 사회를 재구성하고 '인간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 이 책의 주요 목적인 이상, "황제가 무엇을 했다"가 아니라 "누가 무엇을 했다. 그런데 그의 직업은 황제다"하는 식으로 표현된다. 인간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 절대적으로 공평한 시각이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노예든, 귀족이든, 황제든, 부르주아든, 서민이든 각자의 상황에 맞춰 당대의 삶을 살았던 실존적 개인 그리고 신분적, 물적 토대 속의 한 사회적 인간으로서만 등장할 뿐이다.

    고대 로마의 다세대 주택과 셋방살이
    서기 1세기경 로마의 주민은 1백만 명 정도였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인구였다. 제국의 수도에는 주택문제해결을 위해 5-6층(약18m)의 당시로서는 고층주택, 즉 인술라들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당시로서는 현기증날만큼 높은 공동주택으로 수도와 화장실은 없었으며 대개 형편없이 지어진 건물들은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웠다. 화장실은 돈을 내고 이용하는 공공시설물이었는다. 그로부터 거리가 먼 집이나 꼭대기에 사는 사람들은 창문 밖으로 변기통을 쏟아부었고 행인들은 오물벼락을 맞지 않도록 잘 피해다녀야 했다.

    맨 윗층에 집주인이 사는 지금과는 반대로 당시에는 1층에 집주인이나 집주인으로부터 권리를 위임받은 1차 임대자가 살았다. 그리고 꼭대기로 올라갈수록 가난한 사람들이 살았다. 주인은 세입자가 세를 제때 내지 않으면 위층으로 올라가는 사다리를 치워버려 외부와의 통행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러면 세입자는 공공화장실도 공공수도도 이용할 수 없어 고통이 극심했다.

    그리고 고대 로마의 집들은 화재가 잘 났다. 들고다니는 난로나 촛불, 램프 등을 가지고 방안을 돌아다니는 탓에 언제나 화재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화재가 나도 수도가 없으니 불을 끌 수도 없었고, 건물이 조악해서 붕괴되기 쉬웠다. 1층에 사는 주인은 화재가 나면 목숨이라도 건졌지만, 윗층에 사는 세입자들은 타오르는 불길에 대책없이 죽어갔다. 당시에도 세입자의 설움은 지금 못지 않았던 것 같다.

    재력이 있는 귀족이나 부르주아들은 개인주택에서 살았다. 개인주택 중앙천장에는 채광과 환기를 위한 넓은 구멍이 있었고 정원과 식당이 갖추어져 있었다.

    화장실이 사교장이었다고?
    고대 로마의 상하수도 시설은 광장이나 포룸 등 공공장소를 위한 것이었지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개인용 수도시설은 상당한 재력가들만이 설치할 수 있었다. 설치한 수도도 다세대주택의 1층까지만 도달할 수 있었고 윗층에 사는 사람들은 가까운 우물에서 물을 길어와야 했다. 상층부에 사는 사람일수록 물을 긷는데 많은 고통이 따랐으며, 그에 따라 청결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공공화장실은 화려한 대리석으로 꾸며져 있었고 심지어 분수대가 있는 경우도 있었다. 겨울에는 난로를 때워 안을 따뜻하게 했다. 고대 로마인들은 공공화장실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고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일종의 사교장 역할까지 했던 것이다.

    노예가 권력의 2인자가 되던 사회
    로마는 흔히 생각하기에 신분질서가 확고한 경직된 사회처럼 보이지만 계급간의 이동이 용광로처럼 활발했다. 심지어는 황제의 자리도 특정 도시나 특정 가문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이민족과의 결혼도 빈번했고, 신분제도도 완화되어 노예의 삶의 질이 평민의 수준까지 올라갔다.

    로마의 노예신분제도는 우리 생각과는 달리 고통스러운 것도 아니었고 대대로 지속되는 것도 아니었다. 신들을 모시는 제례의식에서도 노예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 누구 못지않게 컸다. 심지어 노예가 엘리트 계층으로 편입된 경우도 있었다. 클라우디우스 황제 때부터 트라야누스 황제 때까지는 이례적으로 내각 구성원으로 해방노예들이 선발되었다. 그로 인해 제국 시절의 원로원들은 이 옛 노예출신들 앞에 고개를 숙여야 했다. 나르키수스같은 노예는 권력의 2인자로 등극해 신하들의 승진과 재산, 목숨까지 좌지우지할 정도였다.
    활발한 계층간의 이동이 사회의 역동성을 나타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황제의 절대권력 아래에서 이루어진 전횡의 또 다른 현상이었다. 권력과의 친소(親疎)에 따라 급작스런 계급상승이 이루어지던 현상은 계급상승을 꿈꾸며 성실하게 노력하는 수 많은 중간계급을 좌절시켰던 것이다. 그것은 후에 로마 멸망의 또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돈에 취한 로마인들
    고대 로마의 사회는 금권정치가들, 즉 돈있는 사람들이 돈을 위해 지배하던 사회였다. 특히 다음 세 부류는 성실한 중간계급을 좌절시켰다. 첫째, 엄청난 재산을 배경으로 원로원 자리를 꿰찬 사람들 둘째, 자신의 행정관직을 이용해 사욕을 채우던 기사계급 셋째, 왕자와 부자들의 시중을 들며, 이들을 잘 요리함으로써 돈을 긁어모은 노예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재산도 황제의 재산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선왕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에, 법관들이 몰수해준 재산, 그리고 세금으로 모인 황제의 재산은 실로 엄청났다. 게다가 정복전쟁을 통해 전리품을 챙김으로써 더 많은 재산을 형성했다. 금권정치인들이 지배하던 로마는 세계의 부를 빨아들이는 빨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제국 시절의 로마는 한마디로 ‘금리 생활자들’의 천국이었다. 토지 부호와 행정관료들은 자신의 수입을 훨씬 웃도는 금리이익을 남기면서 자본을 축적했다. 심지어 국가 보조금으로 먹고 사는 15만명의 실업자들도 금리생활자들이었다. 이들 평생 연금에 해당하는 부양비를 매달 수령해갔다.

    로마는 이러한 경제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전 세계의 부를 빨아들여야 했다. 전세계의 경제를 독점한 로마 제국의 엄청난 도시 발전 속도는 강도 높은 활동력을 끝없이 요구했다. 로마는 거침없이 자본을 대고 제국의 힘을 관리, 운용했다. 로마는 부를 점유하고 소비를 독점했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경제규모를 팽창시킬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당시의 로마는 지금 미국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고대 로마에 페미니즘이 있었다?
    2세기에 들어서면서 여권신장에 힘입어 로마 사회에서 가장의 권한은 급속히 약화되었다. 가장이 자식과 부인에 대한 모든 권한을 지닌다는 법률도 사라졌다. 처녀 때 누리던 편한 삶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며 어머니가 해야 할 일을 등한시하거나 금기시되어 있던 일들에 도전하는 여성들이 등장했다. 결혼한 여성이 자유롭고 독립적인 생활을 추구해 가족의 해체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다. 당시 로마에는 이혼이 만연했으며 상대의 재산을 노리고 결혼하는 일도 흔했다. 이러한 당시의 풍경은 고대에도 페미니즘적 현상이 있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리고 여권신장이 저급한 단계에서 고등한 단계로 계속 발전해왔다는 통념을 깨는 것이다.

    여성들은 남성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문화와 예술, 스포츠를 즐기게 되었으나 직업 활동에는 관심이 없었다. 여성들은 현대사회와 다를 바 없는 자유와 권리를 누렸으나 사치나 소비 외에는 별다른 일을 하지 않았다. 여성들은 직업을 천하게 생각했다. 로마 여인들은 어느 분야에서도 두드러진 성과를 내지 못했으며 남자들을 흉내내는 데 그쳤다. 이 같은 것은 고대 로마의 페미니즘이 여성들의 편협한 이기심의 결과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