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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르 티무르 : 닫힌 중앙아시아를 열고 세계를 소통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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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도서명 아미르 티무르 : 닫힌 중앙아시아를 열고 세계를 소통시키다
저자 성동기 지음
출판사 써네스트
정가 20,000원
발행일 2010년 12월 25일
사양 352쪽 | 758g | 153*224mm
ISBN 9788991958463

칭기즈칸을 넘어선 14세기가 배출한 위대한 대륙의 설계자, 아미르 티무르
유럽인들이 숨긴 그의 생애와 역사적 재해석을 만난다!


아미르 티무르는 유라시아대륙 실크로드 중심지였던 사마르칸트 부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자랐지만 어릴 적부터 총명하고 용맹하여 청년기에는 중앙아시아 몽골 동포들에게 차세대 지도자로 인정을 받았다. 몽골 동포의 내전에서 혹독한 시련과 고난을 겪었으나 그는 결국 중앙아시아를 통일하고 칭기즈칸 이후 대륙의 마지막 정복자가 된다.

그는 120여 민족이 공존하는 중앙아시아의 다민족·다문화 사회를 소통과 화합으로 이끌고 이슬람 수피즘을 장려하여 국교로 성장시켰다. 천재적인 군사전략과 솔선수범하는 리더십을 바탕을 1000일이 넘는 유라시아 원정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그가 재건한 실크로드는 유럽을 다시금 아시아의 선진 문명을 받아들일 수 있게 했고, 이것은 유럽 르네상스의 발화점이 되었다. 14세기 유라시아 대륙을 설계하고 경영하였던 아미르 티무르는 중세에 번영한 아시아의 마지막 선과 근세를 만든 유럽의 출반선을 연결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서구학계에서는 이러한 그의 역사적 업적을 배제하고 있다.

이 책은 대한민국 최고의 중앙아시아 전문가인 저자가 중앙아시아를 대표하는 위대한 정복자였던 아미르 티무르의 일생과 업적을 재평가하고 있다. 14세기 중앙아시아를 발판으로 국가를 세우고 제국을 만든 그의 전략과 리더십은 20세기 말 거대한 구소련이 무너지고, 중국, 러시아, 인도 등 대륙국가들이 요동치고 있는 현재에도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저자 : 성동기

부산에서 태어나서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였다. 우즈베키스탄 국립과학아카데미 역사연구소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인하대학교 국제관계연구소 연구교수, 부산외국어대학교 중앙아시아어과 겸임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중앙아시아연구소 초빙연구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21세기 유라시아 도전과 국제관계』(공저), 『우즈베키스탄 불멸의 고려인 영웅 김병화』, 『억지부리는 남자: 호자 나스레딘』(편역), 『우즈베크어-한국어사전』(공저), 『중앙아시아학 입문』(공저) 등이 있으며, 연구논문으로는 「시베리아 천연가스 개발의 방향성 연구: 유라시아의 국제정치학적 역학구도를 중심으로」, 「러시아와 중국의 정치적 협력관계 분석과 전망: 공조체제의 허와 실을 중심으로」, 「탈냉전기 미국의 대중앙아시아 정책의 변화와 연속성: 오바마 정부에 미치는 교훈을 중심으로」, 「우즈베키스탄 대외관계의 특수성 이해: 친(親)과 용(用)의 관계를 통한 재해석을 중심으로 」, 「체제전환기 카자흐스탄의 민족간 민족의식 및 민족동화 변화 연구: 카자흐인과 러시아인 대상의 설문조사를 중심으로」등이 있다.

    아미르 티무르 Amir Temur(1336-1405)는 14세기 중앙아시아를 세계의 중심으로 만든 사람이다. 만약 아미르 티무르가 없었다면 다민족의 다양한 문화를 만들고 있는 현재의 중앙아시아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지금의 중앙아시아에 흩어져 있던 다양한 민족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이전에 중앙아시아를 지배했던 사람들이 이민족이라면 그는 중앙아시아에서 태어난 중앙아시아 민족의 구성원으로서 중앙아시아를 통일시켰다. 그의 통일은 중앙아시아에 살고 있던 다른 민족들을 자극하였고 그렇게 유럽과 중동 그리고 아시아와는 다른 문화의 중앙아시아를 건설할 수 있었다.

    아미르 티무르는 위기에 빠진 유럽을 구원한 구세주였다.
    그는 유럽을 침략하려는 오스만투르크를 상대해서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승리를 하였다. 서쪽으로 계속해서 진군하지 않을까 하는 유럽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서쪽으로 공격을 하지 않고 다시 동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오스만투르크는 재기하기까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였다. 만약 아미르 티무르가 그 시점에 오스만투르크를 굴복시키지 않았다면 유럽은 어쩌면 역사 속의 왕국들로 남아있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몽골제국에 의해서 소통되었던 실크로드의 아미르 티무르에 의한 재건은 유럽을 다시금 아시아의 선진문명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것은 유럽의 르네상스의 발화점이 되었다. 유럽은 선진 문명을 받아들이면서 빠르게 발전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다시금 오스만투르크에 막혀서 아시아와의 소통을 할 수 없게 되었고 그것이 바로 유럽인들이 신대륙 개척의 역사를 만들게 되었다.

    아미르 티무르는 유라시아대륙 실크로드 중심지였던 사마르칸트 부근의 작은 마을인 케쉬Kesh(현재는 샤흐리사브스Shakhrisabz)에서 1336년에 몰락한 역적 가문인 몽골계 바를라스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종교에 심취하여서 가족을 돌보지 않았다. 아무도 돌보지 않아서 야생마처럼 혼자 자랐지만 중앙아시아 초원의 점성술사들이 800년마다 한 번씩 빛나는 ‘행운의 별’이라고 일컫는 ‘샤흐브키란Sahibkiran’의 기운을 받아 어릴 적부터 총명하고 용맹하여 청년기에 이미 중앙아시아 몽골동포들의 차세대 지도자로 인정을 받았다.
    중앙아시아 몽골동포의 내전에서 혹독한 시련을 겪었으며 급기야 세이스탄 전투에서 화살을 맞아 오른쪽 팔다리에 부상을 입고 평생을 절름발이로 살아야만 했다. 그의 서양식 이름인 태멀레인Tamerlane은 절름발이 티무르에서 유래한다. 이러한 고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침내 중앙아시아를 통일하고 나아가 칭기즈칸 이후 대륙의 마지막 정복자가 되었다.
    그는 120여 민족이 공존하는 중앙아시아의 다민족ㆍ다문화 사회를 소통과 화합으로 이끌면서 수니와 시아에 염증을 느껴 발생한 이슬람 수피즘을 장려하여서 국가적인 종교로 성장시켰다.
    천재적인 군사전략과 솔선수범하는 리더십을 바탕으로 1,000일이 넘는 유라시아 원정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달성하였다. 그는 실크로드의 부활이라는 역사적 사명을 달성하기 위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륙을 설계하였다.
    그는 제국의 수도였던 사마르칸트를 14세기 당대에 최고의 도시로 만들었으며, 이곳을 중심으로 유라시아의 경제, 무역, 문화를 발전시켰다. 특히 1402년 중세 최대의 전투인 ‘앙카라 전투’에서 유럽을 넘보던 오스만제국을 초토화시켜 유럽의 구세주가 되었으며, 이후 유럽 사회는 그의 대륙을 향한 전략과 설계를 배워서 근세의 토대를 만들 수 있었다.
    닫힌 중세의 중앙아시아를 열고 세계를 소통시켜 근세의 발판을 만든 아미르 티무르는 1404년 중국의 명明을 정벌하러 떠났다가 오트라르에서 병으로 위대한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나이 69세였다.
    이후 그는 역사 속에서 철저하게 누군가에 의해서 사라졌지만 그의 대륙을 향한 위대한 전략과 설계는 지금도 살아남아 진화하고 있다.

    노마디즘의 완성은 칭기즈칸이 아니다! 14세기에 출현하여 성을 쌓는 유목민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노마디즘을 업그레이드시키고 대륙을 지배한 아미르 티무르(Amir Temur)를 우리는 이제 만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