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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문

왕따와 금메달:일등주의의 사회적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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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도서명 왕따와 금메달:일등주의의 사회적 기원
저자 이득재 지음
출판사 우물이있는집
정가 12,000원
사양 208쪽 | 390g | 153*224mm
ISBN 9788989824589
왕따여 이제 그만 가슴을 펴라!
 

우리 사회는 지금 왕따들이 쏟아져나오는 시대에 살고 있다. 왕따 때문에 등교를 거부하는 학생들부터, 주류문화에 눌려 있다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소수문화들, 국가로부터 왕따당한 실업자들의 동맹, 장애인들의 권리 주장은 이제 흔할 정도가 되었다.

필자는 그 왕따들이 더 쏟아져나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통제는 질서가 아니며 이탈은 사회적 탈선이 아니다. 더욱이 왕따들은 연대해야 한다. 이 왕따들은 욕구를 억압당한 자들이다. 왕따들의 반란은 학교, 가족을 아동화시키고 오이디푸스화시키는 파시즘적인 명령/복종의 관계를 파악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학생들이 성장을 멈춘 한국사회에서 온전한 ‘나’가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명령/복종, 지배/종속으로 덮어씌우는 모든 이미지들을 걷어내야 한다.

왕따문제가 해결되고 한국사회에서 희망이 생기려면 시혜도, 동정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도 아닌 연대의 정신이 전 사회적으로 파급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코뮤니즘’이다. 한 개인이 인간답게 독립적이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 그리하여 협력하면서 살아가는 사회가 코뮤니즘이다. 사회가 서로 가진 것을 공유하는 사회로서의 코뮤니즘적 전망이 없다면 한국사회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다. 승자가 현금자산, 증권자산, 부동산자산, 교육자산을 독식하는 세상을 끝장내지 않고는 한국사회는 희망을 가질 수 없다.

저자 : 이득재

대구가톨릭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이며, 문화연대 문화교육센터 공동 소장, 계간지「문화과학」편집 위원, 민중언론 <참세상> 편집 위원으로 있다. 집회가 있을 때마다 쫓아다니며 천막 치고 철야 농성 하는 노동자들을 만나는 그는 2010년 5월 '보수의 아성' 대구에서 좌파를 기치로 내건 잡지 <레프트 대구>를 탄생 시켰다.지은 책으로 『가부장제국 속의 여자들』, 『가족주의는 야만이다』, 『도스토예프스키 도시에 가다』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컴퓨터 혁명의 철학』, 『사산하는 일본어 일본인』 등이 있다.

    1. 일등주의, 금메달주의, 왕따에 대한 통쾌한 분석

    금메달주의와 일등주의는 소유욕이 한 사회의 권력구조, 폭력구조와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를 밝혀주는 개념이다. 그 구조 속에서 한 사회는 왕따와 금메달로 양극화된다.
    필자는 한국사회가 “학력격차=소득격차=신분격차=계급격차”의 4차방정식이 완벽하게 작동하는 사회라고 진단한다. 그것에서 파생된 것이 끼리끼리문화, 패거리주의, 우리주의이다. 필자는 이것을 압축하여 우리 사회를 한마디로 ‘조폭사회’라고 부른다. 이미 전작 『가족주의는 야만이다』에서 밝혔던 것처럼 아버지가 보스고 국가인 가정으로부터 학교, 정계, 재계 등 우리 사회 전반에 이르기까지 폭력은 만연해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아직 이 폭력에 쉽게 순응하는 것이라고 꼬집는다. 필자는 금메달주의와 왕따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단지 교실에서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한다.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모든 것이 미봉책이거나 임시방편일 뿐이다. 그 대안에 대한 모색이 바로 이 책의 집필 목적이다.


    2. 왕따의 기원

    학교가, 선생들이 아이들을 이해하구 사랑한다구? 지랄하지 말라구 그래. 우릴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구?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애들이 말을 듣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매를 든다구? 위선 떨지 말라구 그래. 위선이 다른 건줄 알아? 그런 게 바로 위선이라는 거야. 스승의 은혜 따윈 애당초 없었어.

    한 여중생의 글이다. 이 여중생의 글을 단지 학교를 싫어하는 투정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이 학생의 반응이 극단적이고, 학교문제로만 인식한다면 학교문제는 절대로 풀리지 않는다. 왕따는 학생들 간의 문제가 아니다. 학생이 학생을, 학생이 선생님을, 선생님이 학생들을 왕따시킨다. 나아가 국가와 재벌이 노동자를 왕따시킨다.
    왕따는 단지 ‘덜떨어진’ 아이가 왕따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 한 개인 개인이 사회, 국가, 재벌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IMF 이후 우리 사회는 실업자를 양산하고, 가족이 해체되었다. 그것은 국가가 가족을 왕따시킨 결과라고 해야 옳다. 교실 안의 폭력이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자행한 가공할 폭력에 더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때리고 짓밟는 폭력이 아니라 이 폭력은 ‘배제의 논리’를 띈다. 배제와 배척의 논리가 바로 폭력의 형태고, 왕따의 논리인 것이다. 이 배제, 배척을 통해서 금메달이 탄생된다. 이 해묵은 논리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한 왕따의 문제는 절대 해결될 수 없다.


    3. 학교폭력 근절 캠페인에서 놓치고 있는 것들

    최근 학교폭력의 심각성이 사회적인 문제로 떠올랐다. 학교에 신고센터를 개설하고, 경찰, 검찰, 교육당국은 연일 ‘엄중한 대처’를 부르짖고, 학교는 폭력 없는 학교를 만들겠다고 플래카드를 정문에 내걸었으며, TV 광고까지 등장했다. 이 ‘적발’의 논리 안에는 학교폭력을 그저 범죄로만 축소하여 인식하는 천박함을 드러내준다. ‘문제학생’들을 적발하여 ‘지도’하면 학교폭력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까? 이미 우리의 학교에는 주인이 없어졌다. 왕따와 금메달이라는 이분법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마땅히 주인이어야 할 학생과 교사는 모두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학교폭력 문제는 다시 말하자면 사회구조적 문제이지 학교 내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학생들과의 전면적인 전쟁을 선포라니? 아직 사회적 약자인 그들을 향해 던지는 전쟁 선포가 가당키나 한 말일까? 그 논리는 사회적 약자를 향해 전쟁을 선포하고 더욱 왕따시키겠다는 것일 뿐이다.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존재를 확인하려고 한다. 왜 그들은 약자니까. 이런 식이 아니면 그들은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킬 방법이 없다.


    4. 금메달주의는 또다른 왕따를 양성한다

    학교의 폭력만이 왕따를 양산할까? 학교에서 배우는 수업은 어떠할까? 이미 정답이 나와 있는 수업은 철저하게 학생들을 배제한다. 학생들은 타율적인 존재이며 잠재적인 능력을 거세당한다. 그렇다면 교사는? 교사도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자로 전락했다. 정답 이외에는 가르쳐줄 만한 것이 없다. 따라서 학교는 지식의 주체가 없고, 모두 왕따당한 집단으로 전락했을 뿐이다.
    학교는 더 이상 교육이 이루어지는 곳이 아니다. 학생들은 학교에 의해, 교사에 의해 ‘사육’된다. 교과서는 학생이 지식이 도달하는 과정을 봉쇄해버린다. 시험은 인간을 차별하는 마지막 과정이며, 최종 확인 단계이다. 여기서 학생에게도, 교사에게도 선택의 여지란 없다. 왕따는 바로 여기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학생들의 주제설정 능력이 박탈되고, 다양한 선택가능성이 거세되고, 지식과 삶이 분리되면 왕따는 생겨난다. 시험에서 왕따를 당하고 탈락하게 되는 공포는 자율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타율적 인간, 자신을 낙오자로 판단하는 자기비하형 인간을 양산한다. 학교는 이들을 배려하지 못하고 오히려 차별하게 되고, 그것은 학교 공포증으로, 자살로 이어지게 된다. 외적인 요소 때문에 차이가 나고 배제되고 분리되는 바로 그 자리에 왕따가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다.


    5. 왕따여 가슴을 펴고 세상 밖으로 나와라

    우리 사회는 지금 왕따들이 쏟아져나오는 시대에 살고 있다. 왕따 때문에 등교를 거부하는 학생들부터, 주류문화에 눌려 있다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소수문화들, 국가로부터 왕따당한 실업자들의 동맹, 장애인들의 권리 주장은 이제 흔할 정도가 되었다.
    필자는 그 왕따들이 더 쏟아져나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통제는 질서가 아니며 이탈은 사회적 탈선이 아니다. 더욱이 왕따들은 연대해야 한다. 이 왕따들은 욕구를 억압당한 자들이다. 왕따들의 반란은 학교, 가족을 아동화시키고 오이디푸스화시키는 파시즘적인 명령/복종의 관계를 파악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학생들이 성장을 멈춘 한국사회에서 온전한 ‘나’가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명령/복종, 지배/종속으로 덮어씌우는 모든 이미지들을 걷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