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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요정 멜루지네: 괴테의 동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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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도서명 물의 요정 멜루지네: 괴테의 동화집
저자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저
출판사 써네스트
정가 10,000원
발행일 2014년 10월 05일
사양 208쪽 | 277g | 127*188*13m
ISBN 978-89-91958-91-3 03850

구전동화와 창작동화
괴테, 동화의 기초를 쌓다


고전문학의 거장 괴테는 일생 동안 3편의 동화를 남겼다. 일반적으로 동화는 그 발생 시기와 작가가 알려지지 않고 오랫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 온 이야기이다. 우리는 흔히 이런 동화를 구전동화(혹은 민속동화)라고 부른다. 반면 기존 동화를 바탕으로 작가가 새로이 구상하고 만들어낸 이야기는 창작동화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창작동화는 구전동화의 양식과 주제를 이어받고 있지만 기존의 틀에 박힌 서술구조와 정형화된 인물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복잡한 전개 양식을 갖고 있다. 또한 억지로 해피엔딩으로 끝맺지도 않는다. 또 하나의 특징은, 기존 동화가 주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면 창작동화는 그 대상을 어른들에까지 확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괴테는 일생 동안 단 3편의 동화를 썼다. 그리고 괴테는 동화의 기초를 다지고 방향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점은 고전주의를 이끌고 완성시킨 작가라는 평가와는 언뜻 상반된 듯 보인다. 괴테는 세 편의 동화에서 삶의 문제를 비유와 환상적인 묘사를 통해 독자를 상상의 세계로 이끄는 지극히 낭만주의적인 형식을 취한다. 그래서 괴테의 동화를 읽으면서 환상의 세계를 자유롭게 떠돌면서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저자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1749년 8월, 황실 고문관인 아버지와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765년에 법률학을 배우기 위해 라이프치히 대학에 입학했다. 이때 처음으로 자유롭게 레싱, 빙켈만 등을 읽었다. 그러나 1768년 폐결핵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향했다. 1770년 슈트라스부르 대학에 입학하여 다시 법률 공부를 하는 동시에 의학 강의도 들었다. 이때 헤르더와 교제하면서 호메로스, 성서, 오시안, 민요, 셰익스피어 등을 알게 되는데, 이로써 '슈투름 운트 드랑', 즉 질풍노도 문학 운동이 준비되기 시작했다. 법률 학위를 받은 괴테는 고향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와 변호사 활동을 시작하는 한편, 문학에도 열성을 다하여 『괴츠 폰 베를리힝엔』의 초고를 완성했다. 이 희곡은 출간되자 대중과 지식인들의 열광적인 갈채를 받았고, 괴테는 독일의 작가로 명성을 떨쳤다.

1772년 괴테는 베츨라의 고등 법원에서 견습 생활을 시작했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괴테에게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바로 그를 독일의 작가에서 세계적 작가로 우뚝 서게 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Die Leiden des jungen Werther』의 무대가 된 곳이기 때문이다. 베츨라에서 괴테는 약혼자가1749년 8월, 황실 고문관인 아버지와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765년에 법률학을 배우기 위해 라이프치히 대학에 입학했다. 이때 처음으로 자유롭게 레싱, 빙켈만 등을 읽었다. 그러나 1768년 폐결핵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향했다. 1770년 슈트라스부르 대학에 입학하여 다시 법률 공부를 하는 동시에 의학 강의도 들었다. 이때 헤르더와 교제하면서 호메로스, 성서, 오시안, 민요, 셰익스피어 등을 알게 되는데, 이로써 '슈투름 운트 드랑', 즉 질풍노도 문학 운동이 준비되기 시작했다. 법률 학위를 받은 괴테는 고향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와 변호사 활동을 시작하는 한편, 문학에도 열성을 다하여 『괴츠 폰 베를리힝엔』의 초고를 완성했다. 이 희곡은 출간되자 대중과 지식인들의 열광적인 갈채를 받았고, 괴테는 독일의 작가로 명성을 떨쳤다.

1772년 괴테는 베츨라의 고등 법원에서 견습 생활을 시작했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괴테에게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바로 그를 독일의 작가에서 세계적 작가로 우뚝 서게 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Die Leiden des jungen Werther』의 무대가 된 곳이기 때문이다. 베츨라에서 괴테는 약혼자가 있는 샤를로테 부프를 연모했는데, 이 체험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거의 사실 그대로 담겨 있다. 부프에게 사랑을 거절당한 괴테는 도망치듯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후 3년간 괴테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생활하면서 많은 문학적 결실을 거두었다. 바로 기존의 무미건조한 형식미에서 탈피하여 인간 본연의 감정에 충실할 것과 인습적에 것에 대한 저항을 모토로 한 슈투름 운트 드랑의 시기였던 것이다. 그 절정을 이룬 것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었다.

1775년 카를 아우구스트의 초청으로 바이마르를 방문하여 그곳에 정착하기로 결심했다. 이로써 괴테는 슈투름 운트 드랑의 시기를 마감하고 추밀참사관에 임명되어 행정적인 활동을 했다. 다망한 정무 생활 틈에서도 지리학, 식물학, 광물학 등 자연에 대한 연구에도 몰두했다. 그러나 창작 면에서는 침체기였다고 할 수 있는데, 1786년(37세) 이탈리아 여행길에 오름으로써 다시 예술의 세계로 돌아가는 계기를 마련했다. 2년간의 이탈리아 여행은 괴테에게 예술가로서의 자신을 재발견한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1788년 바이마르로 돌아온 괴테는 정무에서 떠나 고독 속으로 숨었다. 이때 나중에 정식 부인이 된, 평민 출신의 크리스티아네 불피우스를 만나 동거를 시작했고, 실러와도 처음으로 만났다. 1794년부터 실러와 깊은 친교를 나누기 시작한 괴테는 실러가 발행하던 문학 잡지인 『호렌』에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1805년부터 1815년에 걸친 나폴레옹 전쟁 동안 나폴레옹을 세 번이나 만난 한편, 독일 문학 최초의 사회 소설로 평가받는 『친화력』를 완성했고, 자서전의 백미로 꼽히는 『시와 진실』 1∼3부도 완성했으며, 『서동시집』 집필에도 착수했다. 1821년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를 완성했으며, 죽기 1년 전 대작 『파우스트』를 완성했으며 1832년 바이마르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다.

역자 : 이관우
공주사범대학 독어교육과와 고려대학교대학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마인츠대 학교에서 독문학을 연구했으며, 독일 뮌헨대학교와 아우크스부르크대학교에서 객원교수로 활동했다. 공주대학교 독어독문학과 학과장, 신문방송사 주간, 언어교육원장, 평생 교육원장 등을 역임하고 2014년 현재 공주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독일 단화의 이론과 실제』『독일문화의 이해』『볼프강 보르헤르트의 삶과 문학』『ARD 방송독일어』『독일의 역사와 문화』『시사독일어』『문학 속의 삶』, 번역서로는 『인류사를 이끈 운명의 순간들』(슈테판 츠바이크) 『붉은 고양이』(루이제 린저 외) 『압록강은 흐른다』(이미륵) 등이 있다.

    괴테의 동화와 부모
    괴테의 집안은 오랫동안 숙박업을 했다. 그래서 재산을 물려받은 그의 아버지는 돈은 많았지만 직업 없이 지냈다. 그래서 그는 아들을 반듯한 직업과 지위를 가진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 했다. 수많은 가정교사를 불러 괴테에게 문학은 물론이고 종교, 언어 등의 수많은 교육을 받게 하였다. 이미 괴테가 열 살이 되면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작가들을 읽었다는 점은 놀라울 정도이다. 어머니는 전문적 지식은 없었지만 잠자리에서 자장가로 전래동요를 한 편씩 읽어주면서 끝부분은 남겨놓았는데, 나머지 이야기는 남겨둔 채 완성시켜보라고 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괴테는 상상력을 키우는 훈련을 했던 셈이고, 10살에 이미 호메로스, 베르길리우스, 오비디우스 등 고대 작가들의 작품을 읽은 것이 더해져 대문호로서의 기초를 다졌다고 할 수 있다.

    실러와의 운명적 만남
    괴테의 동화는 한마디로 조화와 균형을 통한 이상적 세계의 구현을 주제로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괴테는 정치적으로 보수개혁적이서 혁명, 반혁명에서 나타나는 폭력성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 위로부터 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프랑스혁명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인간사회의 조화로운 공동적 삶을 세우고자 했던 실러를 만나고 크게 고무된다. 실러는 잡지를 만들면서 괴테에게 수많은 편지를 보냈다. 즉 괴테는 자신의 생각을 바탕으로 하면서 실러의 이념을 환상적인 수법을 통해 『동화』라는 작품으로 승화시켰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