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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단편문학선집-02 아름답고 광포한 이 세상에서: 러시아대표단편문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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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도서명 세계단편문학선집-02 아름답고 광포한 이 세상에서: 러시아대표단편문학선
저자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외
출판사 써네스트
정가 11,000원
발행일 2013년 10월 31일
사양 288페이지|신국판변형 150*220mm
ISBN 978-89-91958-83-8

써네스트 세계단편문학선 두 번째 책 –러시아  
세계문학에 있어서 러시아 문학의 위치에 대해서 아무도 이의를 달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 단편 문학은 대한민국에서 계속 푸대접을 받았다. 체호프의 단편 정도만이 그나마 지속적인 인기를 가지고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러시아 문학에 있어서 단편문학의 힘은 위대하다. 이제 우리는 그 위대한 힘을 <세계단편문학선 02- 러시아대표단편문학선>에서 보기로 한다.
이 책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푸시킨, 체호프 고골의 대표 단편선은 물론 그 이후의 다소 생소한 작가들의 작품과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들의 작품까지 다양하게 포함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 책에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소개되는 알렉산드르 쿠프린의  <석류석 팔찌>가 있다.
쿠프린은 러시아에서 푸시킨만큼 수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어서 국민작가로 불리고 있지만 한국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작가이다. 이번 기회에 그의 작품의 느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단편 문학으로 처음 노벨상 수상 

얼마 전 201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었다. 캐나다 여성작가 앨리스 먼로가 그 영광의 주인공이었는데, 특이한 것은 그녀가 단편소설 작가로는 처음으로 노벨상을 받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언론은 그녀를“캐나다의 체호프”라고 평했다. 이러한 평가는 먼로와 체호프의 작품세계가 유사하다는 점 외에도, 단편소설 분야에서 역대 최고의 작가가 안톤 체호프라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일반인들은 러시아문학하면 보통 <안나 카레니나>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같은 장편소설을 떠올린다. 실제로 근대문학의 총아였던 소설, 그 가운데서도 장편이라는 소설의 형식을 그 어느 나라보다 탁월하게(길고 심오하게!) 완성시킨 나라는 아마도 러시아일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나라이자, 동시에 체호프의 나라이기도 하다. 즉, 러시아는 나름의 단편소설의 전통과 역사를 발전시키며, 푸시킨, 고골, 체호프, 부닌, 파우스토프스키 등과 같은 수많은 단편소설의 거장들을 배출해냈다.


일반인과 전공자들 모두를 위한 러시아 단편 모음집

이 책은 러시아문학을 대표할 수 있는 유명한 단편소설들을 선정하여 대학의 전공자들은 물론, 일반인들도 쉽고 유익하게 읽을 수 있도록 우리말로 옮겨놓은 단편모음집이다. 총 10편의 작품을 선정하였는데, 이때 개별 작품이 가지고 있는 인지도나 문학사적 위상은 물론, 역자의 수년간의 대학교 수업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독자(대학생들)의 반응 또한 고려하였다. 예를 들어, 이반 부닌의 수많은 단편 가운데 <추운 가을>을 작가의 대표작으로 선정한 이유는 이 작품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아무튼 러시아의 근현대를 통틀어 훌륭한 단편소설을 많이 남긴 작가들을 간추린 다음, 그 작가들의 작품 가운데 대표작을 번역하였다.

알렉산드르 푸시킨 Alexander Pushkin (1799-1837)
러시아의 시인 ․ 소설가 ․ 극작가. 모스크바 출생. 러시아 근대문학의 아버지. 부친은 퇴역 장교로 문필활동을 했으며, 유서 깊은 명문귀족의 후손이었고, 그의 모친은 표트르 대제(大帝)의 총신 한니발의 증손녀로 아프리카인의 피를 이어받았다. 유년시절에 카람진, 주코프스키 등 러시아 낭만주의 시인들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고, 1811∼1817년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 근교의 리체이(귀족전문학교)를 다니는 동안, 그 곳의 자유주의적 기풍과 미래의 데카브리스트(귀족혁명주의자)들과의 교유가 그의 사상형성에 기반이 되었다. 리체이를 졸업한 1817년부터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외무성에 근무하면서, <녹색 램프> 등 문학서클 활동에 참가해 농노제 타도 등 자유주의 사상을 피력하는 작품을 발표하는데, 당대의 혁명적 사상가였던 차다예프에게 보내는「차다예프에게」(1818년)와「농촌」(1819년) 등 푸시킨의 초기 시들이 이 무렵에 완성된다. 1820년에 푸시킨은 최초의 장시(長詩)『루슬란과 류드밀라』를 완성하는데, 같은 해에 정치적인 시들이 문제가 되어 남부 러시아로 유배되고, 키시뇨프와 오데사 등에서 생활한다. 푸시킨은 이 무렵에 장시『카프카스의 포로』(1822년)와『바흐치사라이의 분수』(1823년) 등 낭만주의적 특성이 강한 작품들을 썼다. 1825년 12월 데카브리스트들의 봉기가 실패한 이후, 푸시킨은 황제 니콜라이 1세의 사면을 받고 수도로 귀환해, 다시 문단활동에 의욕적으로 참여한다. 미완성 소설『표트르 대제의 흑인 노예』(1827년), 장시 『폴타바』(1828년)가 이 시기에 완성된다. 1830년, 콜레라가 창궐하는 바람에 발이 묶여 어쩔 수 없이 석 달을 보냈던‘볼지노의 가을’부터 푸시킨은 창작활동의 전성기를 맞이하는데, 이 해에 중편『벨킨 이야기』를 탈고하고, 1823년 시작한 운문소설『예브게니 오네긴』도 완성한다. 생애의 마지막 시기에 푸시킨은 중편『스페이드 여왕』(1834년)과 장편소설『대위의 딸』(1836년) 등을 완성하면서 19세기 러시아 리얼리즘 문학의 초석을 쌓았다. 1837년 1월 27일 푸시킨은 사교계에서 아내 나탈리아와 염문을 뿌리던 프랑스 망명귀족 단테스와의 결투에서 부상을 입고, 이틀 후 38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이 결투는 명백히 그의 진보적인 사상을 두려워했던 전제정권이 짜놓은 함정이었다고 한다.“푸시킨은 우리의 모든 것”이라는 표현처럼 근대 이후 러시아 문학의 모든 장르와 유파는 모두 푸시킨에 의해 정초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니콜라이 고골 Nikolai Gogol (1809-1852)

러시아의 소설가•극작가. 우크라이나 폴타바 현의 소로친치 출생. 폴란드-우크라이나계 하급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문학과 그림, 연기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으며, 열아홉 살이 되던 해에는 당시 러시아제국의 수도였던 페테르부르크로 올라가 말단 관료 생활을 하기도 했다. 젊은 시절 고골의 꿈은 진정으로 국가와 시민에 봉사하는 훌륭한 관료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수도에서의 관료생활은 순탄치 않았으며, 그이후로 인류에 봉사할 수 있는 또 다른 길이 작가라는 사실을 깨닫고, 본격적인 창작의 길에 접어든다. 고골은 고향에 전해 내려오는 설화를 바탕으로 쓴 자신의 첫 작품집 『지칸카 근처 마을의 야화』(1931~32년)가 인정을 받으면서 평론가들로부터‘러시아문학의 새로운 주인공’이라는 찬사를 받게 된다. 이어 1835년에는「비이」,『타라스 불리바』등 낭만주의적 색채를 띤 단․중편소설들을 묶은 작품집『미르고로드』와‘페테르부르크 이야기’를 담은 작품집『아라베스크』을 연이어 출간하면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이어간다. 특히 1836년 4월에는 희곡『검찰관』이 황제의 특명으로 페테르부르크의 알렉산드르 극장에서 초연되어 열광적인 갈채를 받게 된다. 고골의 대표적 단편소설인「코」(1836년)와「외투」(1842년)는 부패한 러시아 사회에 대한 고발이며, 특히 러시아 관료주의에 대한 냉혹한 풍자인데, 이 작품들을 통해 작가는 러시아의 비판적 리얼리즘의 전통을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836년 이후 고골은 관제 비평가들을 비롯한 보수 세력들의 극렬한 비난에 시달리게 되면서, 로마 등 주로 외국으로 거처를 옮겨 생활하게 된다. 이 시기에 쓰인 장편소설『죽은 혼』의 1부는 고골의 문학적 역량이 총집결된 작품이라 할 수 있으며, 1842년 출판돼 문단의 절대적인 호평을 받는다. 그러나 그 후 다시 해외에서 보낸 십여 년간의 세월동안 작가는 커다란 정신적인 고통을 겪게 된다. 『죽은 혼』의 2부를 집필하기 시작하나 실패하고, 결국 극심한 우울증에 빠져 단식을 단행하기도 한다. 1852년 푸시킨과 더불어 러시아 근대문학을 개척한 작가 고골은 결국 43살의 나이로 모스크바에서 생을 마감했다.

안톤 체호프 Anton Chekhov (1860-1904)

러시아의 소설가 ․ 극작가•의사. 러시아 남부 항구도시 타간로그 출생. 조부는 돈을 벌어 자유의 몸이 된 농노였고, 아버지는 타간로그에서 식료품 가게를 운영했다. 포악한 성격의 부친이 파산하여 모스크바로 도망가고, 가족이 해체되는 불행한 유년을 보내면서도 체호프는 고학으로 중학 과정을 졸업하고 모스크바대학 의학부에 입학한다. 체호프는 대학생활을 하면서도 가족의 생계를 위해 가벼운 콩트작품을 잡지에 기고하면서 작가로서의 길을 시작하게 되는데,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는「관리의 죽음」(1883),「카멜레온」(1884),「애수」(1885) 등과 같은 뛰어난 단편들을 발표하며 유명한 단편 작가가 되었다. 그는 작품 활동을 하면서 개업의로서 의료 활동도 병행했다. 가난한 유년과 청년 시절의 체험은 체호프를 책 속에 삶을 그리는 작가로만 머물게 하지 않았다. 그는 정신적 행복에 앞서 실질적이고 물질적인 행복의 토대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는 가난한 민중들에게 자신의 의술을 베푸는 것 외에, 도서관, 극장, 병원, 학교 등 공공기관의 건설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이고 직접 참여도 했는데, 이러한 사회적 토대가 발전할수록 인간의 정신적 행복 또한 커진다는 그의 굳은 신념 때문이었다. 그의 참여 속에 모스크바에 최초의 도서관이 건립되었고, 그의 노력 끝에 모스크바에 피부 전문 병원이, 그리고 모스크바 근교에 농민의 자제들을 위한 학교가 세 곳에 문을 열었다. 실제로 체호프는 자신의 문학적 재능보다 의학적 지식에 훨씬 긍지를 가졌다고 하며, “내 직업은 의사예요. 가끔 시간이 날 때면 글을 쓰기는 하지만”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1891년 대흉작으로 극심한 기아가 발생했을 때, 체호프는 기아구제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봉사활동을 펼쳤으며, 1892년 6월에 콜레라가 창궐하자 톨스토이, 코롤렌코 등과 함께 무료 진료와 학교 건립 등 다양한 사회봉사 활동을 한다. 그러나 이렇게 바쁜 와중에서도 체호프는「상자 속 인간」,「6호실」, 『갈매기』,등과 같은 대표작을 이 무렵에 완성한다. 1898년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공연한 희곡『갈매기』가 대성공을 거둔 뒤, 지병인 폐결핵을 치료하기 위해 얄타 지방으로 거처를 옮긴 체호프는 이곳에서 주로 희곡 창작으로 시간을 보낸다. 이‘얄타 시기’에 나온 작품으로는『바냐 아저씨』,『세 자매』,『벚꽃동산』등 희곡작품과 유명한 단편「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등이 있다. 1901년에는 여배우 크니페르와 결혼하지만, 그들의 결혼 생활은 그리 행복하지 못했다. 1904년 6월 체호프의 병세는 극도로 악화되었고, 독일 남서부 삼림지대인인 슈바르츠발트에 있는 조그만 요양소로 옮겨져, 그 곳에서 숨을 거두었다.

    책속에서

    나는 그와 인사를 나누고 밖으로 나왔다. 나는 말체프의 친구는 아니었다. 그가 내게 관심을 보이거나 날 배려해준 적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운명적인 고통에서 그를 지켜주고 싶었고, 한 인간을 아무런 이유도 없이 냉엄하게 파멸시켜버리는 숙명의 힘에 분노가 치밀었다. 왜 내가 아닌 말체프 씨였을까? 다름 아닌 그를 파멸시켰다는 점에서 이 운명의 힘은 비밀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물론 산술적인 계산과 이성적인 논리라는 것이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인간의 삶을 치명적으로 위협하는 환경이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할 만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고, 이런 치명적인 힘이 뛰어난 재능을 가진 선택된 사람들은 파멸시키는 상황을 나는 직접 목격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힘에 굴복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나는 내 안에서 자연의 외적인 힘과 우리 운명에는 존재하니 않는 그 어떤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고유한 특징 같은 것 말이다. 나는 아직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지만, 울화가 치밀었고, 그래서 이 자연과 운명에 저항하기로 결심했다. - <아름답고 광포한 이 세상에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