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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적 자유vs과학적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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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도서명 인문학적 자유vs과학적 자유
저자 이승범 지음
출판사 우물이있는집
정가 12,000원
발행일 2012년 02월 15일
사양 205쪽 | 382g | 153*224mm
ISBN 9788989824572

 

철학하는 의사 이승범,
소통의 불가능을 탐색하여 소통에 다가가다


‘통섭’이니 ‘소통’이니 ‘비빔밥’이니 ‘섞기’니 하는 말들이 유행이다. 모두들 섞으면 좋다, 소통하면 좋은 것 아닌가 하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그것은 꼭 통합되어야만 하는걸까? 그리고 정말 우리 사회는 ‘통섭’이라는 것이 되고 있는 것일까? 의사 이승범은 주변을 둘러보며, 특히 임상현장에서 벌어지는 소통 불가능한 현장에서 이런 질문을 수없이 떠올렸다. 소통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대화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이해하자는 ‘시대적 요청’이라지만 현실에서는 정말이지 그것이 제대로 이루어지고나 있는 것일까?

그는 학제가 세분화되면서 멀어졌던 학문간 소통에 대한 시도를 싸잡아 비판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다만 왜 불가능했는지, 그것은 왜 또 현재진행형인지를 더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고 권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소통은 말 몇 마디로 할 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소통에 대한 시도는 번번이 불쾌한 후유증만을 남긴다고 책을 통해 말하고 있다.


 

    철학하는 임상의사 이승범
    임상의학자 이승범은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을 벌였다. 의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병원에서 가정의학과 전공의 과정을 수료하고 전문의를 마친 한 평범한 의사였던 임상의사 이승범. 그는 그 평범함에 안주하지 않고 지인들과 함께 철학을 공부하는 ‘장승배기철학모임’을 만들더니 이에 ‘호모루덴스 미술읽기 모임’의 대표까지 맡았다.
    그는 자연과학, 그 중에서 의학적 지식과 사고만으로는 부족한 ‘그 무엇’을 느꼈다. ‘그 무엇’은 의사 이승범이 미학, 철학, 의학, 과학을 넘나드는 그의 르네상스적 지식으로 채워질 것 같다. 그는 이제 의학과 인문학의 만남이라는 숙제를 풀기 위해 첫 책을 냈지만, 앞으로 그의 다양한 글쓰기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다.


    소통에 대해 좀 더 솔직해지자
    ‘통섭’이니 ‘소통’이니 ‘비빔밥’이니 ‘섞기’니 하는 말들이 유행이다. 모두들 섞으면 좋다, 소통하면 좋은 것 아닌가 하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그것은 꼭 통합되어야만 하는걸까? 그리고 정말 우리 사회는 ‘통섭’이라는 것이 되고 있는 것일까?
    의사 이승범은 주변을 둘러보며, 특히 임상현장에서 벌어지는 소통 불가능한 현장에서 이런 질문을 수없이 떠올렸다. 소통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대화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이해하자는 ‘시대적 요청’이라지만 현실에서는 정말이지 그것이 제대로 이루어지고나 있는 것일까?
    그는 학제가 세분화되면서 멀어졌던 학문간 소통에 대한 시도를 싸잡아 비판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다만 왜 불가능했는지, 그것은 왜 또 현재진행형인지를 더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고 권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소통은 말 몇 마디로 할 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소통에 대한 시도는 번번이 불쾌한 후유증만을 남긴다고 그는 말한다.
    이승범은 그것을 언젠가는 풀어야 할 자신의 숙제로 받아들였다. 이 책 [인문학적 자유 vs 과학적 자유]는 그 숙제를 차근차근 풀어나간 그의 지적 노력이다.


    소통의 불가능을 탐색하여 소통에 다가가기
    이승범은 어느 날 찰스 스노의 [두 문화]를 만나게 된다. 이 책은 그가 지금껏 임상현장에서 풀려고 해도 풀리지 않던 그 안개 같은 궁금증을 풀어주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그는 스노가 과학적 문화와 인문학적 문화가 대립하고 단절되어 있는 현실에 대한 개탄에 공감했다. 그것은 크게 보면 사회의 발전에도 걸림돌이 된다는 의견에도 크게 공감했다. 그는 내친 김에 소칼의 [지적 사기]와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을 읽으며 생각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공부에 빠져들수록 그는 두 문화의 소통을 지향한다는 책들 대부분이 인문학자는 인문학자대로, 자연과학자는 자연과학자대로 자기주장을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통이 아무리 트렌드라고 하지만 억지 화해는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성급한 화해는 오류만 증폭할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소통해야 한다’는 당위에서 자유로워지고자 했다. 대신 왜 소통이 안 되는지, 학자들마저 왜 불쾌한 지경까지 이르는지 탐색하기 시작했다. 인문학과 과학(특히 의학)은 그 근본이 어떻게 다른지, 대화를 불가능하게 하는 차이는 도대체 무엇인지를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소통의 지름길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의료현장은 인문학과 의학이 부딪히는 전쟁터
    이승범이 인용한 철학자 가다머와 정형외과 의사들 사이의 논쟁은 참으로 흥미롭다. 2000년 11월 하이델베르크 대학 정형외과병원에서 통증환자에 대한 접근을 주제로 학술회의가 열렸다. 의학자들은 통증이 만성화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만성화되면 환자의 신체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가다머의 의견은 달랐다. 의학이 다가 아니라 환자 스스로 고통 속에서 자신의 과제를 해결하고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가다머가 보기에는 ‘치유의 주역’은 환자 자신이어야만 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형외과의사들도 물러서지 않았다. 만약 고통에 압도되어 이겨낼 수 없다면 그것은 더욱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개인들은 가다머가 주장하는 모범적인 인격을 가진 사람들보다 약했다. 그때 필요한 것이 의사이고 약물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눈치를 챌 수 있다. 인간의 고귀한 차원을 잃지 않은 철학자의 ‘인간적인 삶’과, 과학과 현대의학에서 말하는 ‘인간적인 삶’은 표현만 같았지 전혀 다른 뜻으로 쓰인다는 것을. 결국 가다머와 정형외과 의사들의 토론은 서로의 경계선을 확인하는 것으로 끝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이 책에서 의부증/의처증, 감정 없는 의료와 인간적 의료, 금연할 권리와 흡연할 권리 등에 대한 과학자와 인문학자의 견해는 극과 극에 가깝다. 이승범은 도돃에 도무지 해결점이 없어 보이는 이 소통 불가능의 상황을 하나씩 짚어보고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만이 가장 빨리 소통에 이르는 길임을 암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스피노자와 파우스트
    이승범은 소통의 가능성을 탐색하면서 스피노자를 만난다. 스피노자는 선대에 신의 이름으로 행해진 종교적 도그마와 독단적인 폭력의 성채인 중세의 ‘인격적 신’ 개념을 파열시키려고 했던 인물이다.
    스피노자는 자유가 세계의 인과적 필연성을 탐구하고 인식해서 미몽과 무지의 어둠에서 해방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에는 중세의 종교적 도그마가 소위 진리라는 이름을 독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율법을 벗어나 앎을 통해 무지를 깨고 해방되는 삶, 그것이 자유였다. 이승범의 이 스피노자의 기획이 과학정신이 추구하는 바와 매우 가깝다고 생각했다. 인과성을 탐구하여 미신과 속박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은 과학주의의 입장과 공명한다고 본 것이다.
    이승범이 만나 또 하나의 인물이 파우스트다. 그는 파우스트에게서 역설적인 희망을 보았다. 파우스트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영혼을 팔아버렸듯 인간도 자신의 편리함을 좇다가 대신 인간성의 중요한 무엇인가를 대가로 지불했다고 보았다. 파우스트가 파멸을 맞을 때까지 욕망을 놓지 않은 것처럼, 아무리 과학에 대한 이미지가 파우스트적이라고 해도 과학정신의 극한에는 인간의 주체성과 자유가 가능하지 않을까?
    이승범은 이렇게 질문한다. 인간은 칸트가 말한 대로 자유의지를 통해 스스로를 구원하기도 하지만, 파우스트처럼 끝없이 욕망을 꿈꾸기 때문에 오히려 주체성과 자유의 가능성이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