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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를 심판하는 망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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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도서명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
저자 야콥 슈프랭거, 하인리히 크라머
출판사 우물이 있는 집
정가 30,000원
발행일 2016년 10월 25일
사양 616쪽|500g|152*225mm
ISBN 9791186430347

 

500 말레우스 말레피카룸(Malleus Maleficarum) 드디어 한국어로 번역

500 만에 한국에 번역되는 출간 되었어야 ,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수백 만의 여성을 고통과 죽음으로 몰아넣었기에 절대로 출간되어서는 안 되었을 이 책은 1486년에 독일에서 처음 발행되었다. 이 책은 역사상 가장 심각한 여성 혐오를 조성했던 책이다. 저자는 책에서 어떻게 여자가 마녀가 되었고, 또 마녀가 된 그들의 특징은 어떠하며 그 마녀들의 재판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세히 쓰고 있다. 이 책을 통해서 현대의 독자는 마녀사냥의 기원을 이해하게 되고 여성혐오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알게 된다. 러시아 역사학자 로진스키의 해설은 이 책의 역사적 의미를 정확하게 짚어주고 있다. 3부로 이루어져 있으며, 3부로 구성된 이 책의 1부는 마녀의 실재를 부정하며 따라서 그들에 대한 처벌도 거부하는 성직자들을 겨냥한다. 2부에서는 마법의 여러 형태와 그에 대한 해결 방법을 제시하며 3부에서는 재판관과 심문관들로 하여금 마녀에 대처하여 그들을 처벌할 방편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부록으로 넣은 로진스키의 해설에서 유럽에서의 마녀 사냥 역사와 의미를 살펴볼 수 있다.

 

기획 의도 출간 의의

서양 중세사를 마녀 사냥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다. 그리고 << 말레우스 말레피카룸: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 >>을 빼고 마녀 사냥을 이야기할 수 없다.

중세 마녀 사냥이 그렇게 확산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 책의 발간과 이 책의 확산으로 인해서 가능했다. 이 책은 가까이는 독일과 유럽뿐만 아니라 멀리 미국까지 그 영향력을 키웠고, 이 책 때문에 수 백만 명의 여성이 죽거나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책의 번역이 안 된 상태에서 그 책의 제목과 일부 발췌 부분이 알려진 상태였다.

원래 라틴어로 쓰여져 있었던 이 책을 <우물이 있는 집> 출판사는 러시아어 번역본을 발견하게 되었고, 러시아 역사학자 로진스키의 뛰어난 해설을 볼 수 있었다.  

로진스키는 마녀 사냥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하였다.

그는 해설에서 << 말레우스 말레피카룸: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 >>이 어떻게 발간되었고, 어떤 식으로 역사 속으로 들어갔으며, 마녀 사냥이 갖는 정치적, 종교적, 경제적 의미가 무엇인지 잘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출판사는 비록 러시아어로 번역된 것이지만 로진스키의 뛰어난 해설과 함께 번역을 한다면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은 중세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소중한 일차적 자료가 될 것이며, 중세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독자들에게는 중세에 일어났던 비논리적 행동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여성학자들에게는 여성비하의 역사를 짚어보는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마녀재판의 기원과 역사

 

기독교 교의학에 악마를 끌어들인 사람은 2세기의 이레니우스이다. 그에 따르면, 다른 천사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창조된 악마는 천성이 선하고 자유 의지를 지녔기 때문에 선과 악을 모두 행할 수 있지만 자신의 의지와 과실로 인해 사악한 존재가 되어 오직 악한 일만 행하게 되었다. 즉 악마는 특유의 교만함과 도도함 그리고 강한 질투심으로 인해 자신에게 허락된 자유를 남용했고 결국 타락한 천사가 되어 하늘에서 떨어지고 말았다고 한다. 동시대의 신학자 타티안은 “악마와 마귀의 몸은 공기 또는 불로 이루어 져 있으며 몸이 물질로 이루어져 있는 만큼 먹을 것을 필요로 한다”고 확신했고 또 다른 신학자 오리게네스는 “악마와 마귀는 산 제물에서 피어 오르는 연기를 게걸스럽게 들이마신다”라고 주장했다. 오리게네스에 따르면, 평범한 인간에 비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훨씬 더 많은 재능을 지닌 악마와 마귀를 죽은 사람의 영혼 정도로 여기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그들은 별의 위치와 움직임으로 미래를 내다볼 수 있고 또 신비로운 지식의 소유자이기도 하다고 주장하였다.

중세 초기 최고의 권위를 누렸던 신학자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인들이 섬기는 이교 신들을 마귀로 간주했다. 하지만 기독교 교의가 승리를 거둔 이상 마귀들의 사악한 의지도 누그러지고 약화되어 있었다. 만약 기독교에 귀신 쫓는 의식이 없다면 악마가 온갖 질병과 불행, 흉작과 가뭄 그리고 기근을 불러올지도 모른다고 그는 생각했다. 악마가 힘을 쓰지 못하기 때문에 중세 초기에 세속 법정은 해악을 끼치지 않는 마법사 또는 마녀들에게는 거의 관심이 없었고 오히려 반대로 ‘밤마다 날아다니는 여자들’을 박해한 자들, 즉 “이 여자들이 아이들을 잡아먹고, 산 사람의 내장을 빨아먹는다”고 주장한 자들을 비난했다. 교회와 정치 모두가 안정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세속 법정이 스스로를 군중의 광기와 엄격하게 구별 지은 반면 교회의 견해는 점점 더 군중의 광기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교회는 세속 법정을 자신의 영향력 하에 두었다.

마법사와 마녀들이 처음에 어떻게 처형당했는지는 투르의 그레고리우스 주교가 저술한 《프랑크인의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그에 따르면, 580년에 왕의 두 아들을 죽음으로 이끈 한 마녀가 화형을 당했고 또 그로부터 3년 후 프레데군트 왕비의 셋째 아들이 죽었을 때는 악마의 조종을 받은 여자들 몇 명과 장관 뭄몰이 살인 혐의를 받았다. 심한 고문을 견디지 못한 뭄몰은, 왕과 왕비의 총애를 받기 위해 마녀들로부터 연고와 음료를 받았다고 실토했고 결국 보르도로 유배되었다. 그리고 여자들 역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스스로를 마녀라고 불렀는데 이들은 능지처참(당시에는 사지를 수레바퀴에 매어 찢어 죽였다)을 당한 후 화형에 처해졌다. 바로 이것이 메로빙거 왕조 시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마법 재판이었다.

이렇게 마법 재판 즉 마녀 재판은 시작되었다.

9세기까지만 해도 세속법은 마법사와 마녀가 실제로 해악을 끼쳤는지 안 끼쳤는지 그 여부를 판단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보았고, 해악을 끼친 사실이 인정될 경우 그 경중에 따라 서로 다른 형량을 선고했다. 하지만 교회 권력이 강화되면서 ‘마법사의 죄’가 갖는 종교적 성격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제 마법사와 마녀는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 죄는 물론 신성을 모독한 죄, 악마에게 복종한 죄 그리고 이교적 원리의 힘 앞에 굴복한 죄에 대해서도 벌을 받아야 했다. 이처럼 마녀 사냥 처음에는 여자와 남자가 있었다.

하지만 11세기, 즉 이단이 출현하기 전까지만 해도 종교 재판이 선고하는 형벌은 주로 정신적 형벌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면 장시간의 기도와 일시적인 파문이 그런 형벌이었다. 하지만 심할 경우 종신 파문을 선고 받아 임종할 때조차 성찬을 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고, 때에 따라서는 사형에 처해지는 이단자도 있었다.

13세기에 들어서면서 마녀 사냥이 더욱 광범위하게 일어나게 된다. 이때 마법사들 즉, 남자들보다 여자들에게 마녀 사냥의 화살이 많이 향하게 된다. 이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여자가 남자보다도 오래 살고 또 재산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된 것으로 파악이 된다. 마녀 사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13세기 이후 1484년에 발표된 인노첸시오 8세의 악명 높은 칙서 《지고의 것을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마녀 사냥을 종교적으로 합법화 하는 중요한 문서가 되었으며 이 칙서는 두 이단 심문관인 저자들에게 부적과 같은 효과를 갖게 되었다. 그 이후 마녀 사냥의 광풍은 18세기까지 이어졌고, 수백만 명의 여성이 고통을 겪었다.

 

 

마녀 재판은 일종의 사업이었다.

 

마녀재판은 상업적인 목적을 갖고 있었다. 마녀 용의자는 주로 엄청나게 부유한 과부들이었다. 특히 가족이 없으며 돈이 많은 여자들이 마녀로 잡혀가는 경우가 많았다. 과부들은 증인해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부두교라는 종교를 믿는 자들 역시악마를 숭배한다는 명목 하에 마녀로 잡아갔다. 마녀로 인식이 된 혐의자에게는 사형의 형벌을 내리는데 마녀는 그 혐의를 가리는 동안 소요되는 모든 비용을 마녀가 지불해야 한다. 고문 도구 대여료, 마녀를 고문하는 고문기술자 급여, 재판에 참여하는 판사 인건비, 마녀를 체포할 때 소요된 모든 시간과 비용, 마녀가 확정될 경우 화형을 집행하는 데 소요된 모든 비용 및 관값, 교황에게 내야 하는 마녀세 등을 마녀 용의자가 모두 지불해야 했다. 마녀가 화형에 처해진 이후 다시 한번 처해지는 형벌이 바로 '전 재산 몰수'형이었다. , 마녀는 마녀재판 집행관과 교황에게 급여를 지불해가면서 고통을 당하고, 자신을 살해한 교황과 그 일당들에게 자신의 전 재산을 헌납하였다.

 

 

마녀를 어떻게 가려 냈을까

 

마녀를 가려내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였다. 묶어서 물에 던져 가라앉으면 무죄인 것으로 판명하고 꺼내 주었고, 물에 뜨면 마녀로 판명하고 그 자리에서 처형하거나 재판에 넘겼다. 몸에는 마귀의 표가 있다. 이 표를 찾기 위해 재판에 참석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몸에 있는 털을 전부 깎은 뒤 혐의자의 몸 전체를 샅샅이 뒤지기도 하였다. 그런 다음, 사마귀나 흉터 또는 태어날 때부터 있던 점과 같은 부분을 모두 바늘로 찔렀다. 혐의자가 통증을 느끼지 않거나 피가 나지 않을 경우 그 부분을 사탄의 표로 여겼다.

가톨릭 정부와 프로테스탄트 정부는 둘 다 마녀사냥을 조장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프로테스탄트 지도자가 가톨릭보다 더 심하게 마녀사냥을 자행했다.

하지만 마녀를 화형장으로 끌고 가던 한 사제는 자신이 보기에 화형을 당한 여자들 중 마녀는 아무도 없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21세기에도 마녀사냥은 계속되고 있었다.

 

얼마 전 한 뉴스에서는 페루 중부 아마존 지역에 사는 원주민공동체가 70대 여자노인을 화형에 처했는데 그 이유가 지역에 질병을 퍼뜨렸다는 것이다. 73세 여성을 붙잡아 마녀로 규정한 뒤 화형식을 거행했다고 한다.

제대로 된 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이런 일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70대 노인을화형 시킨 부족이 미개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종교적인 이유로 마녀의 존재를 거부하던 기독교가 종교적인 이유로 마녀의 존재를 승인하는 과정에는 복잡한 논리가 결부되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물론 <말레우스 말레피카룸: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 본문에서도 충분히 그 내용을 읽을 수 있지만 러시아 역사학자 로진스키의 100페이지가 넘는 해설에서 우리는 그 이유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그의 글을 통해서 우리는 마녀 사냥이 단순하게 마녀를 사냥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거기에는 종교적인 이유, 경제적인 이유, 정치적인 이유가 함께 포함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를 숨겨둔 채 희생자로서의 마녀를 일반인들에게 보여주고 마녀 사냥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여전히 지금도 마녀 사냥의 위험 속에서 살고 있다. 출간된 지 500년이나 지난 이 책을 한글로 번역해서 내는 까닭은 마녀 사냥이라는 광풍이 다시는 이 땅에서 없어야겠다는 생각이다. 이 책을 통해서라도 마녀 사냥의 말도 안 되는 논리를 정확하게 짚어나갈 수 있어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마녀 사냥에 대책 없이 당할 수 밖에 없었던 여인들 마냥 우리의 영혼과 육신은 산산히 부서지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