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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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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도서명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
저자 프란시스코 페레, 박홍규 공저
출판사 우물이 있는 집
정가 12,000원
발행일 2013년 10월 21일
사양 247쪽 | 324g | 150*215*20m
ISBN 978-89-91958-82-1 04370

 

페레는 스페인에서 가장 이름이 알려져 있는 교육운동가이자 아나키스트이다. 그가 1901년에 문을 연 '모던 스쿨'은 흔히 자유학교의 선구라고 일컬어지는 닐의 서머힐에 비해서도 20년이나 앞서 세워졌고, 그 교육 이념과 철학에 있어서도 당시의 시대상황에 비추어보면 가히 혁명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는 자율성과 창의성을 존중하고 학교에서 모든 권위, 상벌마저도 없앴는대, 종교가 교육을 독점하고 있던 시대에 이런 실험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의 글들은 이미 10여 년 전 많은 예비교사, 교육의 혁신을 꿈꾸거나 시도하려는 많은 교사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심지어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라는 제목은 한 교사단체에서 한 해의 슬로건으로 내걸 정도였다. 이 책은 프란시스코 페레의 '모던 스쿨'을 앞에 배치하고, 페레의 글과 시대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도록 박홍규 선생이 쓴 페레의 약전을 수록했다. 오래 전 페레의 글을 통해 교육학자, 교사, 예비교사들은 그 근본 철학을 다시 한 번 곱씹어 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저자: 프란시스코 페레
1849년 스페인 아텔라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젊은 시절 왕정을 무너뜨리기 위해 열렬한 공화주의 운동가로 활동하였다. 1885년의 왕정을 타도하기 위한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가자 파리로 망명한 후 그곳에서 스페인어 교사로 일했다. 파리에서 아나키즘에 경도된 페레는 제자 뫼니에가 남긴 거액의 유산으로 스페인에 모던 스쿨을 설립하였다. 모든 권위를 없애고 아이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존중하는 그의 교육은 스페인의 34개교에 영향을 주어 국내외적으로 많은 파장을 일으켰다. 1906년 스페인 국왕 테러 사건 공모 혐의로 체포되었으나 증거불충분으로 이듬해 석방되었다. 1909년 7월 군사반란 발발, 다시 배후조종 혐의로 체포된 페레는 신속한 재판을 거쳐 총살당했다. 페레의 교육철학은 슈타이너, 프라너칸 신부, 프레네, 마카렌코, 닐 등 자유교육 사상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세계의 많은 대학에서 페레의 교육사상을 연구하고 있으며 미국에는 페레협회가 있다.

저자 박홍규
1952년 생으로 일본 오사카 시립대학에서 공부했다. 노동법을 전공한 진보적인 법학자로서 하버드대 인권연구소 객원교수를 거쳐 현재는 영남대학교 법대 학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윌리엄 모리스의 생애와 사상』, 『내 친구 빈센트』, 『오노레 도미에―만화의 아버지가 그린 근대의 풍경』등이 있으며 역서로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등 이제까지 30여종에 넘는 책을 냈다.

역자 이훈도
1954년 대구 출생. 1978년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일반사회교육학과 졸업. 동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철학 및 사학을 전공, 박사학위 취득. 대학에서 교육철학, 교육사 등을 강의했다. 논문으로는 「야학의 한국교육 문화사상사적 연구」, 「한국교육문화의 이중성」등이 있으며, 공저로서 『신문의 교육론 비판』(경북대학교 출판부, 2000)이 있다.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인가

    진정한 교육자는 아동에게 자신의 생각과 의지를 강요하지 않으며, 아동 자신의 에너지에 호소한다.
    ―프란시스코 페레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권위에 의한 어떠한 억압도 아이들에게 실행되어서는 안 된다는 페레의 비권위적 사고를 대변한다. 어떠한 명분을 내걸어도 권위에 의한 억압을 정당화시킬 수 없다. 가장 대표적인 권위의 행태는 ‘폭력’이다. 페레는 권위에 반대하므로 당연히 ‘폭력’에 반대한다. 아이에게 사용하는 폭력이 제 아무리 선한 명분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것은 나쁜 것이다. 왜냐하면 폭력이 필요한 것은 궁극적으로 기존의 권위에 아이를 편입시키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페레의 교육 목표가 국가와 종교의 권위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인격체의 양성에 있었던 만큼 ‘폭력의 배제’는 교육의 방법이자 목표였다. 페레가 활동하던 19세기 말 스페인은 아직도 왕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스페인은 서구 국가들 중 가장 늦게 왕정의 굴레를 벗어나게 된다) 교육은 가톨릭계에서 담당하고 있었다. 당시 스페인의 어린이의 인권은 우리나라의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라는 말을 만들면서 그 인권의 존중을 설파하던 때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페레의 사상이 얼마나 급진적인 것이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폭력뿐 아니라 모든 상벌제도도 폐지했다. 그는 과학과 자연과학과 도덕적 합리주의에 근거한 커리큘럼을 만들고, 종교적 도그마와 정치적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운 교육을 수립했다. 따라서 어떠한 시험이나 평가도 실시하지 않고 그야말로 아이들에게 어떠한 경쟁, 강제, 모욕, 수치도 주지 않았다. 게다가 가톨릭에서 금지한 남녀공학은 물론, 부유한 계층과 가난한 계층이 함께 배우면서 ‘연대와 평등’을 몸으로 체득할 수 있게 했다.